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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 수집 외에는 할 줄 아는게 없는 한 버러지. 막장버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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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장 앞에서....

넋두리 | 2009/10/18 20:31 | Posted by 막장버러지
크리스마스를 전후해서 둘째가 예정되어 있다.
집사람과 산부인과에 들렀다가, 산후조리원을 예약했다.
일반실은 140만원, 특실은 160만원......호기롭게 특실을 예약하고 나오는데 집사람이 한마디 한다.
뭐하러 쓸데없이 20만원 더 비싼 방을 예약하느냐고....
아마도 집사람은 나 몰래 산후조리원에 전화를 해서 일반실로 예약을 변경할 것이다.
내 생각에 12월 쯤에는 금전적으로 약간 여유가 생길 것 같긴 하다만.....살림하는 사람 입장에서 20만원은 되게 아까운 돈일지도 모르겠다.

첫째는 내일부터 어린이집에 보내기로 했다.
산후조리원에는 첫째와 함께 산모가 있을 수 없다고 한다.
첫째도 이젠 엄마 품을 벗어나 당당히 독립해야만 할 시간이 왔다만.....아마도 적잖이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다.
어린이집에 첫번째 납부한 돈이 45만원이 넘는다. 보육료, 경비, 입소료....이런게 다 뭔지 모르겠다.
그나마 보육료가 일수로 계산해서 절반이기에 망정이지.....다음달 부터는 매달 보육료만 34만원을 내야 한단다.

이번에 증명서를 떼면서 새롭게 안 사실인데.....내 연봉이 올해 6천만원이란다.
황당하다.
연봉 6천만원이면 매달 5백만원씩은 받아야 한다. 그런데 난 5백만원이란 돈이 매우 낯설다.
이번에 증명서를 꼼꼼하게 살피면서 알게 된 사실은.....연봉을 구성하는 명목에는 전혀 급여와는 상관없는 항목이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피부로 느끼는 내 연봉은 4천만원 수준인데....증명서는 나의 생활수준을 과감하게 배신하고 있었다.
나중에 은행에서 대출받을 때는 참 유리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연봉 6천만원짜리 월급쟁이는 아들내미 어린이집 보내는 돈이 무서워 벌벌 떤다.

누군들 내게 쉽게 얘기할 것만 같다.
너 음반사는 돈 반만 줄이면 애 어린이집 두 번도 보내겠다고.....
그건 명백한 사실이다.
대신 내가 친구들과 술자리도 거의 하지 않고, 심지어는 회사에서 점심도 심심치않게 굶어가면서 음반을 산다는 사실은 그냥 묻혀버리는 것이다.
고등학생 시절 점심값 아껴서 음반사던 그 상황이 30대 중반 회사원이 되어도 전혀 바뀌지를 않았다.
음반을 사는 것, 책을 사는 것....그것은 나의 전부였다.


많은 사람들이 종종 물어본다.
나중에 저 음반 갖고 뭐할거냐고.....
그러게 말이다.
저걸 갖고 도대체 뭘 할 수 있을까?
음반을 모으는 행위를 어떤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나도 답을 못하겠다.
음반을 사고, 뜯고, 듣는 행위가 그 자체로 목적일 수는 없는 것일까?

또 많은 사람이 물어본다.
저거 다 듣기는 하냐고.....
일단 그 질문의 의도가 뭔지 잘 모르겠다.
돈주고 샀으니까 당연히 듣는다.
내가 음반을 장식용으로 산 것은 아니니까. 그리고 장식용으로 구매하기에 음반은 너무 비싼 장식품이다.
그런데 그 질문이 마치 고등학생 시절....어렵게 음반 하나 장만해서 한달 내내 돌려듣는 식으로 저 모든 앨범들을 듣느냐는 질문이라면....그건 질문할 필요가 없다.
당연히 그렇게는 못듣는다.
음반 1만장을 365일로 나누면 거의 30여장 가까이 된다.
내가 하루에 평균 8시간 이상 음악을 듣지만, 하루에 30장을 들을 방법이 없다.
물리적으로 1년에 한 번씩 조차도 못듣는 것이다.
물론 저 앨범 중 지극히 소량의 몇 장은 여러번 돌려 듣기도 하지만 말이다....
죽도록 돌려듣기 위한 음반만을 사던 것은 음반 1천장 모으기도 전에 끝난 일이다.
듣고싶은 음반이 쏟아져 나오는 속도는 내가 음반을 살 수 있는 속도보다 항상 빠르다.
듣고싶은 음악을 모두 들어보겠다는 꿈은 실현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전하는 것은 멍청한 짓일까?

아들내미는 항상 내 방에 들어오고 싶어한다.
가끔씩 들여보내주면 CD들을 보고 들떠서 펄쩍펄쩍 뛴다.
만 3살도 안된 나이.....아직 음악을 즐길 나이는 아니지만, 음악을 틀어주면 피아노 소리, 바이올린 소리, 첼로 소리, 기타 소리 정도는 구분한다.
하지만 실제로 아들내미가 CD들을 보면서 제일 좋아하는 놀이는 특정한 색깔의 CD를 찾는 것이다.
"빨간 CD 찾아볼까?" 하면 음반장을 처음부터 훑으면서 빨간색 커버로 되어있는 CD들을 찍으면서 좋아라 한다.
언젠가 아들 둘의 손을 양손에 잡고, 함께 음반을 사러 돌아다니는 날이 올까?
사들고온 음반을 함께 들으며 음악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날이 올까?

아들내미가 인생에 대해 고민하는 시점이 되면 함께 음악을 들으며 이야기해 주고 싶다.
모든 음악이 각기 사랑받을 이유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모든 이들도 각기 사랑받을 이유를 가지고 있다고....그러므로 우리도 모든 이들에게 너그러워지자고.....
특정 음악을 어떤 사람은 좋아하고 또 어떤 사람은 싫어하듯이, 우리도 모든 이들에게 사랑받고 살 수는 없는 법이라고.....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힘들게 하더라도 당당히 맞서자고.....

진짜로 담배를 끊어야겠다.
돈이 무서워서 언젠가 음반을 끊어야 하는 시점이 올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전에 끊을 수 있는 것은 모두 끊으면서 버텨보자.